9世 府尹公 諱 世麟 咸安郡守 任官題名記序(9세 부윤공 휘 세린 함안군수 임관제명기서) |
己酉首冬余爲母乞此郡翼月中澣視龜郡乃四歧之間簿領雲集使
기유수동여위모걸차군익월중한시구군내사기지간부영운집사
星絡騷余才不能堪患前之守此郡某賢某劣將欲爲法爲戒摉先
성락소여재불능감환전지수차군모현모렬장욕위법위계방수선
生案不得焉吏趙軒告曰自古郡無先生案但吏等竊錄姓名藏於郡
생안불득언리조헌고왈자고군무선생안단리등절록성명장어군
司間者爲惡少所竊去有一吏名國保年踰八十父子相繼錄私相傳
사간자위악소소절거유일리명국보년유팔십부자상계록사상전
云余取而觀之起洪武癸丑盡弘治己酉百有十七年其間事蹟錄有
운여취이관지기홍무계축진홍치기유백유십칠년기간사적록유
祥略白玄進以上不錄高士原以下職之來去交龜年月乃祥錄焉闕
상략백현진이상불록고사원이하직지래거교구년월내상록언궐
國保不錄以因國保所錄令舍第進士仲珍謄寫以成先生案襲以白
국보불록이인국보소록영사제진사중진등사이성선생안습이백
幅藏以黑撌雖千百載繼書先生姓名傳之不朽噫前賢之守此郡不
폭장이흑귀수천백재계서선생성명전지불후희전현지수차군불
啻什百而賴老吏以傳後之君子無廢野史焉
시십백이뢰노리이전후지군자무폐야사언
弘治七年蒼龍甲寅秋八月下澣郡守信川康伯珍誌
홍치칠년창용갑인추팔월하한군수신천강백진지
[참고]
2011년5월30일 9世 諱 世麟先祖 後孫 28세 明奎가 諱 世麟先祖님의 공적을 조사키 위해 경남 함안 문화원에 咸安誌[함주지]를 열람하여 그 내역을 상기와 같이 찾아서 여기에 謹書를 하고 해석은 諱 世麟祖 의 兄인 諱 世鳳祖의 後孫인 28世 기주[역평家]가 漢文解讀을 하여 여기에 재 기록을 함.
任官題名記序임관제명기서[해석] |
기유년 초겨울에 어머님을위하여 이 郡에가기를 주청하고 다음 달 중순 貴郡에 이어 사방 여러 부령들이 구름처럼 모여 대단히 소란스러워 나의재능으로는 전 군수의 일에 대하여 능히 감당해(알길이 없어)내지를 못하고 이郡에 사는사람들의 법이 되고 경계가 되고자 하여도 방천 선생안을 얻지를 못했으나 아전 趙 軒이 고하여말하기를 옛 부터 郡에는 선생안이 없고 다만 아전 등이 기록하여 둔 성명이 郡司에 감추어져있는 것을 싫어한바가 되어 몰래 한 아전의 이름을 버리고 나라를 보전한 것이 80이 넘도록 父子가 서로 이어 사사로이 기록한 것을 내가 취하여 살피건대 홍무 계축에 시작해 홍치 기유년 에 마친 것이 무려 117년이라 그 간 사적이 白玄進 이상은 기록 되었으나 高士原이하는 기록되지 않았고 職의 오고 간 年月만 기록되었다.
국가 보전 문서로 기록되지 않고 그냥 잇는 소록을 나의 아우인 진사 仲珍으로 하여금 등사시켜 작성했다, 이를 흰 보자기에사서검은 궤 속에 넣어 비록 1100년이나 이어진다 하드라도 선생들의 성명을 계속하여써서 영원이 없어지지 않게 전하기로 했다.
앞날에어진수령들이 이 군을 지켜온 분이 수백 인에 그치지 않는데 이 늙은 아전의 덕으로 전하게 되었으니 뒷날의 군자는 야사라 하여 이것을 없애지 마라
弘治七年 蒼龍 甲寅 [1494年] 秋10月 下旬 郡守 信川 康伯珍 기록함.
任官題名記序 임관제명기서 |
己酉년 겨울에 어머니를 위하여 내가 군수를 사임할 무렵 그 다음 달 중순에 군의 문서와 군수들의 사적을 보니 많고 번잡하여 나 같은 재주로는 전임군수의 우열을 가릴 수 없고, 또 앞으로 표준 할 것과 경계할 선생안을 찾았으나 얻지 못했다. 아전 趙軒이 말하기를 예부터 우리 군에는 선생안이 없었다.
다만 아전들이 전임군수의 성명만을 사사로이 기록하여 보관하였던 것을 악당들의 소행으로 잃어버리고 國保라는 아전의 나이八十이넘었으나 父子가 서로 이어서 전해 온 기록이 있다고 했다.
나 이것을 받아보니 공민왕 계축년(1373년)에 시작하여 李朝성종 기유년(1489년)까지 그간 己酉年(1489년)까지 그 간 百十七년간 의 사적이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었다.
白玄進이상은 기록하지 않았고 高士原이하는 부임한 연도와 퇴임한 연도 및 交龜(수령들의 인수인계)년월을 자세히 기록했다.
그리하여 國保의 기록에 의하여 나의 아우인 진사 仲珍으로 하여금 등사시켜 선생안을 작성 했다,이를 흰 보자기에 싸서 검은 궤 속에 넣어 비록 백년이 지난다 하더라도 선생들의 성명을 계속하여서 영원이 없어지지 않게 전하기로 했다.
아 앞날의 어진 수령들이 이 郡을 지켜 온 분이 수백 인에 그치지 않았는데 이 늙은 아전의 덕으로 전하게 되었으니 뒷날 의 군자는 野史라하여 없애지 말 것이다.
성종二十五년 甲寅(1494년)팔월 하순
군수 신천 강백진 적다